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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줄거리 및 시대적 배경

by 미수딤 2024. 4. 20.

영화 '레볼루셔너리로드' 포스터

줄거리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이프릴(케이트 윈슬렛)은 뉴욕 어느 파티 장에서 만난다. 에이프릴은 프랭크의 자유분방함과 허세 있는 야망에 매력을 느꼈고 첫눈에 반한 이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한다. 그리고 미국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뉴욕 근교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정착한다. 누가 봐도 이 둘은 행복해 보이는 부부였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생활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꿈과 야망이 넘쳤던 프랭크는 현실에 타협해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원이 되었고 에이프릴은 연극배우의 꿈을 이뤘지만 매번 사람들에게 혹평을 받는다. 이렇게 쳇바퀴처럼 이들의 삶은 반복되었고 서로 지쳐갔다. 그리고 행복한 척 자신들을 포장했다. 또다시 연극 공연을 망친 어느 날 프랭크는 에이프릴을 위로해 준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프랭크에게 모진 말을 하며 프랭크의 감정을 상하게 했고 프랭크 또한 에이프릴에게 억눌렀던 감정을 쏟아낸다. 다음날 둘 사이 감정은 해소하지 못한 채 언짢은 마음으로 프랭크는 뉴욕으로 출근을 한다. 같은 시각 집 정리를 하던 에이프릴은 문득 과거를 떠올린다. 처음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오던 날 프랭크와 함께라면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들떴던 순간을말이다. 무엇보다 프랭크는 꿈과 야망이 있었던 누구보다도 멋진 남자였다. 현실에 타협해 살아가고 있는 삶이 자신이 사랑했던 프랭크의 본질을 질식시켜 간다고 생각한 에이프릴은 프랭크가 오랫동안 가고 싶어 했던 파리로의 이민을 계획한다. 프랭크가 파리에서 자유를 누리며 본인이 원하는 것을 찾도록 해주고 싶었고 그런 프랭크를 보며 에이프릴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음 사랑했던 프랭크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프랭크는 에이프릴의 제안에 망설이지만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수 있다는 희망에 이내 동의한다. 하지만 프랭크는 불안했다. 에이프릴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특별함은 본인에게 없는 것 같고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가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침 회사에서도 승진 기회가 생겼고 에이프릴 또한 셋째까지 임신하게 되어 더더욱 갈 이유는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었다. 프랭크는 솔직하게 에이프릴에게 말한다. 지금 여기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에이프릴은 첫째가 생겨 결혼을 하면서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고 이 선택이 실수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둘째를 가졌다고 하면서 셋째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으니 지울 거라고 한다. 그리고 프랭크에게 안정적이란 이유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이냐고 되물으면서 항상 실패가 두려워 도전을 하지 않는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만큼 에이프릴은 너무나도 간절하게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프랭크는 낙태를 생각하고 있는 에이프릴에게 이성적이지 못하다하며 정신과 상담을 받기를 조언하고 여기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에이프릴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에이프릴은 삶의 의미를 잃었다. 그리고 해결되지 않을 문제로 반복적인 싸움을 하는 이 모든 상황에 지쳤다. 에이프릴은 스스로 아이를 낙태하며 세상을 떠난다.

시대적 배경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길 이름이며 동네에 위치하고 있는 단독주택은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한다. 미국에서는 주로 이런 동네들은 부유한 중산층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미국 대다수의 영화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공허의 상징으로 많이 비유하는데, 그 이유에는 시대적 배경이 작용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집값을 이야기할 때 외곽보다는 도심이 비싼 경향이 있다. 하지만 1960년~ 1990년대의 미국은 도심이 대체로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가난한 공간이었다. 그 이유는 20세기 초반의 국제 정세와 맞물려있다. 20세기 초에는 1,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유럽의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해서 내리는 항구도시가 바로 뉴욕과 보스턴이었다. 그러면서 심각한 주거난이 발생하기 시작했는데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 문제와 비싼 땅값으로 고안된 주거 형태는 4, 5층 짜리 벽돌 건물 이었다. 오늘날의 빌라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굉장히 부실하게 지어졌으며 방 하나에 30명~ 40명에게 세를 주는 형태로도 이루어졌다. 이렇기 때문에 위생 문제와 화재 문제가 늘 존재했다. 이 문제에 대한 솔루션으로 자동차의 대중화가 제시됐다. 미국의 헨리 포드의 나라로 자동차의 대중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미국에서는 서민들도 살 수 있는 싼 가격의 자동차들이 있었는데 많은 서민들이 자동차를 보유하게 된다면 도심과 떨어진 넓은 공간에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또한 1920년 말에 트라이브로 브릿지가 완성되면서 맨해튼과 롱아일랜드가 연결되었고 첫 번째 교외지역이 생기지 시작한다. 이렇게 교외지역은 주거 난을 해소하는 것과 동시에 여러 정부정책들과 맞물려 유색인종을 배제하고 다양성에 인색한 공간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이 지점이 위의 공허함과도 연결된다.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무리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양성과 자극을 배제한 정제된 공간에서의 삶이 그리고 내 의지가 아닌 남이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결국은 살아갈 의지를 잃게 만든게 아닐까 생각한다.

 

느낀점

나도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만 해도 나는 특별하고 다른 ‘평범함’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것만 같았다. 그땐 그걸 이루어낼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만큼이라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특별한 능력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현실과 타협했다. 에이프릴처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프랭크처럼 사실은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까봐 두렵기도 하다. 나이가 드는 것은 내가 특별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 
 
지금 현실을 벗어나고 내가 원한다고 생각했던 새로운 현실은 마주한다 해도 벗어나고 싶어 질까 궁금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현재를 즐기는 것이 해답인가 어렵기만 하다.